일본 탐미주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섬세한 심리가 돋보이는 장편소설. 사랑스러운 고양이 ‘리리’를 중심으로 쇼조, 후쿠코, 시나코 세 남녀 사이에서 펼쳐지는 생생한 갈등과, 마지막 책장을 덮은 후 남는 잔잔한 여운이 인상적인 작품이다.
윤기 나는 털과 크고 맑은 금빛 눈동자를 가진 고양이 ‘리리’는 순수함을 상징하는 백합에서 따온 이름처럼 존재 자체만으로도 사랑스러운 고양이다. 사람에게 응석부리기를 좋아해 주인 쇼조가 젓가락으로 집어주는 전갱이를 몇 번이나 애교스럽게 받아먹다가도, 자신을 귀여워하지 않는 이의 부름에는 용케 모르는 척하는 영리한 모습도 가지고 있다. 바다거북의 껍데기를 뒤집어 놓은 듯 반질반질하게 윤기가 난다고 하여 ‘대모갑(玳瑁甲)’이라는 이름이 붙은 서양종 고양이 리리의 알다가도 모를 매력이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산뜻하게 품고 있다.
이 작품의 독특한 점은 전처 시나코가 후처 후쿠코에게 보내는 편지로 시작한다는 점이다. 시나코는 다른 건 다 필요 없으니 그저 키우던 고양이 리리만 제게 보내 달라 청한다. 거기에는 리리를 미끼삼아 전남편을 다시 제게 불러들이려는 속셈이 숨겨져 있다. 생활 능력이 없는 남편 쇼조는 고양이 리리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하다 못해 때로는 부인보다 더 소중히 대하곤 한다. 쇼조의 행동은 애묘인(愛猫人)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만하지만, 남편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고양이가 밉게만 느껴지는 두 여자의 심리도 그럴듯하게 펼쳐져 마치 드라마를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하다.
1956년 도쿄영화(東京映畵)에서 이 작품을 영화화하여 기네마준보(キネマ旬報) 베스트 10의 제4위에 올랐으며, 1964년 간사이 텔레비전(関西TV)에서 드라마로 제작해 방영한 바 있다. 또한 1996년 텔레비전 도쿄(TV東京)에서 다시금 제작, 방영한 드라마로 일본 내 안방극장을 달구었으며 후에 명작드라마로 선정되기도 했다.
다니자키 준이치로의 소설은 이미 국내에 여러 작품들이 소개되어 있지만,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가 국내 번역본으로 출시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1936년에 발표된 작품임에도 최근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는 애묘인들에게 따뜻한 공감과 재미를 자아내기 충분하다. 매끄럽게 흐르는 서사와 함께, 곳곳에 연필로 낙서한 듯한 고양이 일러스트를 함께 실어 더욱 생동감을 살렸다.
쇼조는 전갱이 한 마리를 젓가락으로 집어 올려 높이 쳐든다. 리리는 뒷다리로 서서 타원형 밥상 가장자리에 앞발을 걸치고 접시 위의 안주를 노려보고 있다. 그 모습이 바의 카운터에 기대어 있는 손님 같기도 하고 노트르담의 괴수 같기도 하다. 마침내 먹이를 들어 올리자 리리는 갑자기 코를 씰룩거리고 마치 사람이 깜짝 놀랐을 때처럼 크고 영리한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래에서 올려다본다. 그러나 쉽게 내어줄 쇼조가 아니다.…쇼조는 전갱이를 리리 코앞까지 가져갔다가 도로 자신의 입안으로 넣는다. 그리고 생선에 스며든 식초를 쪽쪽 빤 뒤 딱딱한 뼈는 잘게 씹어서 다시 그걸 멀리 가져갔다 가까이 들이댔다 높이 올렸다 내렸다 장난질을 한다. 그에 맞춰 리리는 앞발을 밥상에서 떼더니, 가슴 양 쪽에 유령 손처럼 바짝 붙이고 아장아장 따라간다. 그러다가 생선이 머리 바로 위에서 멈추면 이번에는 그것을 목표로 달려든다. 재빨리 먹이를 낚아채려다가 간발의 차이로 실수 할 때는 다시 뛰어 오르기를 반복한다. 이렇게 해서 겨우 전갱이 한 마리를 얻는 데 5분에서 10분이나 걸린다.
_ pp.15-16
이 고양이, 리리는 서양종이라고 했다. 후쿠코가 예전에 손님으로 이 집에 왔을 때 리리를 무릎에 앉힌 적이 있다. 리리의 부드러운 촉감이며 결 고운 털이며 얼굴 생김새며 그 예쁜 모습이 근처에서는 좀처럼 보기 힘든 암고양이의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때는 정말 귀여워했다. 이런 고양이를 귀찮게 여기는 시나코를 비정상이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남편에게 미움 받는다 해도 어째서 고양이에게까지 그런 마음을 가질 수 있는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후쿠코 자신이 후처로 들어와 보니 남편이 시나코 때와 달리 자신을 아껴준다는 걸 알면서도 시나코를 우습게 여길 수 없는 게 묘했다. 왜냐하면 쇼조가 고양이를 좋아하는 게 그냥 좋아하는 정도가 아니라 도가 지나쳤기 때문이다.
_ pp.31-33
몇 번이고 불러도 그때마다 리리가 대답을 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자기를 귀여워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을 용케 잘 알아, 쇼조가 부르면 대답했지만 시나코가 부르면 모르는 척 했었다. 그런데 오늘밤은 몇 번이고 귀찮아하지도 않고 대답할 뿐만 아니라 애교가 섞인 듯한 뭐라 말할 수 없는 다정한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그리고 푸르게 빛나는 눈동자로 몸을 살랑대며 난간아래까지 왔다가 스윽 멀어져 가는 것이었다. 고양이 딴에는 자기가 무뚝뚝하게 굴었던 사람에게 오늘부터 사랑받으려고 지금까지의 무례를 어느 정도 사과하는 마음으로 저렇게 소리를 내는 것이었다. 태도를 싹 바꿔 보호를 받겠으니 제발 알아달라고 안달하는 것이다. 시나코는 처음으로 이 짐승으로부터 이런 다정한 대답을 듣고서 어린애처럼 기뻐서 몇 번이고 불러보았다.…“있잖아, 리리. 이제 아무데도 가지 마” 하고 말하면서 한 번 더 꽉 안아주자 희한하게도 리리는 얌전하게 오래 안겨있었다. 지금 그 말할 수 없이 슬픈 눈빛을 한 늙은 고양이의 마음속이 신기하게도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이었다.
_ pp.102-105
1886년 7월 24일, 도쿄 니혼바시(日本橋)에서 5남 3녀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랐으나 1897년 중학교에 진학할 무렵, 외조부의 사업을 이어받은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가세가 기울었으나 큰아버지의 도움으로 학업을 계속할 수 있었다. 중학교에 다니던 중 ‘학생구락부(学生倶楽部)’라는 문학잡지를 자체 발간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을 본격적으로 나타내기 시작했다.
1908년 도쿄제국대학(현재의 도쿄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학비미납으로 퇴학당한다. 이 후 1910년 제2차 ‘신사조(新思潮)’에 소설 『문신(刺青)』, 『기린(麒麟)』과 희곡 『탄생(誕生)』을 발표하게 된다. 1911년『소년(少年)』 등의 작품이 발표된 이후 소설가 나가이 가후(永井荷風)에게 격찬을 받으며 인정받기 시작했다. 이후에 탐미주의적인 작품을 써 나가면서 ‘악마주의 작가’로 불리며 문단에서 주목받기 시작한다. 1915년, 29세였던 다니자키는 9살 아래의 이시카와 치요(石川千代)와 혼인하게 된다.
결혼 후 아내 치요에게 매력을 느끼지 못하고, 치요의 여동생이었던 세이코에게 빠져들게 된다. 이때 다니자키의 친구였던 소설가이자 평론가인 사토 하루오(佐藤春夫)가 치요에게 동정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것이 곧 사랑으로 발전하면서 삼각관계에 이른다. 이후 다니자키는 친구인 사토에게 자신의 아내를 양도해버려 일본 문단 내의 가장 큰 스캔들을 일으키게 된다.
1923년 관동 대지진을 겪고 관서지방으로 이주한 직후 다니자키 초기 문학의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1924년부터 연재하게 된다. 다니자키의 작품 세계는 『치인의 사랑(痴人の愛)』을 경계로 해서 서양의 미를 동경하던 것에서 점차 일본적인 소재와 전통미를 추구하는 것으로 바뀌어 가는데 1928년 연재하기 시작한 『만지(卍)』와『여뀌 먹는 벌레(蓼喰ふ虫)』가 그것이다.
나중에 다니자키는 일본 전통 문화에 깊이 심취하게 되는데, 『겐지 이야기(源氏物語)』의 현대어역(譯) 작업을 시작한 것도 이 시기(1935년)의 일이다.
1936년 잡지 『개조(改造)』 1월호와 7월호에 소설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 1942년 『세설(細雪)』, 1951년 『다니자키 신역 겐지 이야기(潤一郎新訳源氏物語)』, 1962년 『미친 노인의 일기(瘋癲老人日記)』 등의 작품을 연이어 발표하며 식지 않는 왕성한 창작열을 과시했다. 1958년, 1960년에 두 번이나 노벨상 후보에 올랐으나 수상까지는 못했다.
성신여대 대학원 한문교육학과 졸업
중학교 교사 역임
번역서 『의례의 온톨로기』, 『다자이 오사무 단편 10선』(공역) 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