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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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나쓰메 소세키


도련님, 의협심에 불타는 철부지 또는
순수함을 잃지 않고 세상에 맞선 

『도련님(坊ちゃん)』은 나쓰메 소세키가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마츠야마의 한 중학교 영어 교사로 재직하며 겪은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로 1906년에 잡지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에 발표됐다. 

도쿄에서 태어나 ‘도련님’ 소리를 듣고 자란 주인공은 실은 무모한 천성으로 집안에서 천덕꾸러기 신세나 다름없다. 물리전문학교 졸업 후 얼떨결에 시골 중학교 수학 교사로 부임하게 된 주인공은 특유의 ‘대쪽 같은 기질’로 불의에 맞선다. 그러나 고지식하고 세상 물정에 어두운 도쿄 토박이 도련님은 다양한 인간 군상을 마주하며 가는 곳마다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킨다.

오로지 자신의 안위에만 집착하는 교장 ‘너구리’, 속을 알 수 없는 엉큼한 교감 ‘빨간 남방’, 빨간 남방의 눈치나 살피며 알랑거리는 미술 선생 ‘따리꾼’, 군자 같은 영어 선생 ‘끝물호박’, 대장부의 기상이 돋보이는 수학 주임 ‘높새바람’ 등 저마다의 개성이 뚜렷한 인물들과 집요하고 짓궂은 학생들, 그리고 도쿄 토박이 초임 교사 ‘도련님’이 좌충우돌하는 일화에는 웃음을 자아내는 해학과 풍자와 더불어 인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이 담겨 있다.

가족들마저 포기하고 만 주인공을 이해해 주는 단 한 사람인 ‘기요 할멈’은 타지에서 외로이 생활하는 ‘도련님’의 정신적 지주가 되어 준다. 편지와 회상으로 주로 등장하지만 이야기의 중심축 역할을 하는 기요 할멈은 도련님의 솔직담백함을 높이 사며 그의 성장을 응원한다. 도련님에게 기요 할멈은 돌아갈 고향이나 다름없는 인물이며, 이후 도련님의 삶을 상상해 보게 하는 단서가 된다. 

‘도련님’은 과연 기요 할멈의 말처럼 올곧고 품성이 착하여 사랑받을 만한, 그러나 하릴없이 가련한 인물일까? 아니면 따리꾼의 말처럼 의협심에 불타는 철부지에다 가족들의 말처럼 꼴도 보기 싫은 글러 먹은 인물에 불과할까? 100년이 지났지만 행간에 여전히 물음 가득한 나쓰메 소세키의 매혹적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보자.

[책 속으로]

나는 앞뒤 가리지 않는 막무가내식 기질을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탓에 어릴 때부터 손해만 보고 살아왔다. 초등학교 다닐 때는 학교 2층에서 뛰어내리는 바람에 허리를 삐어 1주일가량 고생한 일도 있었다. (본문 7쪽)

어허, 이놈 좀 보게. 선생님에게 아잉기요라니, 그건 또 무슨 소리냐? ‘기요’는 세상에서 내가 제일 존경하는 할멈의 이름이야. 너희가 감히 함부로 불러선 안 되는 고귀한 이름이란 말이다. (본문 72-73쪽)

그러고 보면 기요 할멈이야말로 우러러봐야 할 존재였다.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회적 지위도 미천한 노파지만, 사람 됨됨이로 봐서는 대단히 고귀했다. 지금까지 그토록 신세를 많이 지고서도 고맙다는 생각은 별로 해보지 않았는데, 혼자 이렇게 먼 타향에 와서 보니 비로소 그 친절함을 절실히 깨닫게 되었다. 조릿대 잎에 싼 에치고의 사사아메를 먹고 싶어 한다면 흔쾌히 에치고까지 한걸음에 달려가 사다 준다고 해도 그만한 가치는 충분했다. 
(본문 76-77쪽)

도련님은 대쪽 같은 기질인데다 워낙 불뚝성이라 그게 좀 염려가 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함부로 별명 따위를 붙이는 건 그 사람들에게 원망을 사는 씨앗이 될 수 있으니 대놓고 면전에서 마구 부르지 않도록 하세요. 만일 별명을 짓거들랑 편지로 저에게만 알려 주세요. (본문 152쪽)

먹고 싶은 경단을 먹을 수 없다니 정말 비참했다. 하지만 자신의 약혼녀가 다른 남자에게로 고무신을 바꿔 신은 건 더더욱 참담할 것이다. 끝물호박 선생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경단 타령은커녕 사흘쯤 식음을 전폐한다고 해도 불평을 토로할 계제가 아니었다. 정말이지 인간만큼 믿지 못할 존재는 이 세상에 없다. (본문 161쪽)


이 1전 5리가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은 장벽이 되어서 나는 말을 걸고 싶어도 할 수 없다. 높새바람은 여전히 입을 꾹 다물고 있다. 결국 우리 둘 사이에는 그놈의 1전 5리가 화근이 되고 말았다. 나중에는 학교에 가서 그 1전 5리를 보는 것 자체가 고통스러웠다. (본문 167쪽)

논리정연하게 공세를 취하는 쪽을 선인이라 단정할 수 없다. 수세에 몰린 쪽을 악인이라 단정할 수도 없다. 표면상으로는 빨간 남방의 말이 아주 그럴싸했지만, 아무리 겉으로 훌륭하다 한들 마음속까지 이끌리게 할 수는 없었다. (본문 184-185쪽)

내가 반과 반 사이에 들어가자 튀김이니 경단이니 하는 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다. 워낙 학생들이 많다 보니까 누가 하는 소리인지 알 수도 없었다. 용케 알아낸다고 해도 ‘선생님에게 튀김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경단이라고 한 게 아닙니다. 선생님께서 신경쇠약이라 헛들은 것’이라고 둘러댈 게 뻔했다. 이런 비열한 근성은 봉건 시대부터 길들여진 이 고장의 고질적인 습관이라 아무리 타이르고 가르쳐 준들 도저히 고쳐질 리 만무했다. 
(본문 214쪽)

김정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국제번역가연맹(FIT/UNESCO 공식자문기구) 한국 대표기관
(사)한국번역가협회 정회원
㈜코자카트레이딩 대표이사
번역서 『다자이 오사무 단편 10선』 외 다수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