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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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진 장편소설

18세기 후반, 수원화성에서 만나는 눈물과 사랑 그리고 평화의 이야기

정조임금이 백성과 더불어 내내 복되고 평화롭기를 갈망하며 쌓은 수원화성(華城) 안에 숨겨진 비밀스런 사랑과 상처의 이야기를 담은 소설이다.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을 쌓아가는 주인공들의 사랑과 우정이 씨줄을 이루고, 성리학이 지배하던 조선과 그 팍팍한 대지를 파고드는 서학의 물결이 만들어 낸 문명적 만남이 날줄을 이루어 한 폭의 비단 같은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그 위에 한자어 파체(破涕)와 라틴어 파체(Pace)가 절묘하게 아로새겨진다.

이백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숱한 문학과 예술의 태(胎)를 빌려 끊임없이 다시 태어나는 임금 정조, 다방면에 천부적 재능을 지녔지만 남인서얼 출신이라는 한계에 좌절하던 청춘 김태윤, 왕실 호위무관이자 조선 최고 무인가문의 후계자인 차정빈, 그리고 천주의 가르침을 따르고자 하는 아름다운 소년 이유겸이 주인공이다.

파체(破涕)-“눈물을 거둬라”,

파체(PACE)-“평화를 주소서”

목차

눈 오는 날 / 하일대주 / 치(治) / 바람의 성(城) / 화원유희 / 여름비 / 오성지/
용 이야기 / 온(穩) / 하루 / 방화수류정 / 미련 / 눈 위의 십자가 / 푸른 나무들의 밤 / 개장수 / 삼구일타 / 순채 / 마음 / 아버지와 아들 / 죽은 꽃 / 달빛영롱 / 고독 / 야반도주 / 개화성 / 연인 / 자운향 / 유년의 뜰 / 진주분 / 겨울 복사꽃 / 밀고자 / 비밀의 비밀 / 파체 / 목어 / 별리 / 눈물의 골짜기 / 자유 / 두 임금 / 사랑할 때와 죽을 때 / 봄날 / 작가의 말 / 참고자료

[책 속으로]

어린 시절, 아버지(사도세자)가 그 아버지(영조)에 의해 죽는 것을 보고 자란 정조는 극심한 정신적 고통 속에 누구도 믿지 않는 고독한 왕이었다. 임금은 죽은 아버지의 원혼을 위로하고, 자신의 오랜 소망을 실현하기 위해 수원에 화성을 짓기로 한다. 그런 그에게 나타난 희대의 천재, 김태윤. 남인 서얼 출신에 골수 서학(천주교)쟁이인 그에게 임금은 아끼는 호위무관인 차정빈을 붙여 준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튼튼한 성을 지어보라고. 

태윤과 달리 정빈은 조선 최고 무인가문의 후계자다. 거기에 더해 절대무공과 완벽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다정다감하고 싹싹한 성품의 태윤은 정빈과 친해보려고 애쓰지만 냉정한 정빈은 무시로 일관한다. 그런 둘 사이를 이어주는 건 정빈의 집 무원당(無怨堂) 정원을 가꾸는 노비 유겸이다. 아이는 천주학을 하는 집안이 괴한의 침입으로 풍비박산 난 후 혼자 살아남아 정빈의 별당으로 숨어들었다. 그렇게 세상과는 단절된 채 꽃과 나무를 돌보며 사는 유겸의 소망은 언젠가는 연경으로 가서 신학(神學)을 공부하고 사제가 되는 것이다. 

유겸과 정빈에게는 출생과 성장의 비밀이 있다.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는 지극한 비밀이다. 여기에 정빈과 어렸을 적 함께 어울렸던 세자와 당대 권력을 풍미했던 노론의 소장파 핵심 심일재, 사랑을 갈구하는 여인 영신의 이야기가 얽혀든다. 

비명에 간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간절한 그리움과 백성에 대한 사랑이 담겨 수원화성은 차츰 모습을 갖춰간다. 설계와 시공을 맡은 태윤은 정조의 이념적 지향을 제 비밀한 믿음에 담아 탐미의 극치인 성을 쌓아간다. 거기에 유겸과 나누는 이야기들이 잠언처럼 지친 영혼을 위로한다. 

조선 상단(商團)을 주름 잡고 있는 자운향이라는 여인, 그리고 차정빈의 아버지 차원일, 그 둘의 뒤에 서서 아는 듯 모르는 듯 움직이는 정조, 서학의 뒤를 쫓는 노론의 가혹한 공세의 이야기가 이어 펼쳐진다. 전체 스토리의 축을 이루는 정빈과 유겸의 애틋한 사랑, 태윤의 우정은 결국 서학을 탄압하는 노론의 혹심한 칼끝에 선다. 누가 살고 누가 죽을까. 아마도 그것은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책은 죽음보다 깊고 운명보다 질긴 사랑의 원형을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규진

이규진은 그동안 습작만 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책을 냈다.
꽃과 나무를 좋아하고,
조촐하게 내리는 비와 순하게 부는 바람을 좋아한다.
잘 내린 커피와 향 좋은 차가 주는 기쁨을 알고
조용한 음악과 가벼운 책이 주는 위로에 고마워한다.
오후 세 시에는 꼭 누군가를 생각하고
오래 품은 소망은 언젠가는 이루어진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