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자이 오사무 단편 10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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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다자이 오사무

일본 데카당스 문학의 정수

다자이 오사무의 작품 세계를 만나다

자기혐오와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여 자신의 고통스러운 내면세계를 작품에 고스란히 담아낸 일본 천재 소설가 ‘다자이 오사무’. 그의 단편 소설 10편을 일곱 명의 역자들이 번역해 한 권의 책으로 엮었다.

이번 신간 『다자이 오사무 단편 10선』은 교과서에 작품이 소개될 정도로 일본 문학계에 큰 영향을 끼친 다자이 오사무의 폭넓은 작품 세계는 물론, 단편 소설의 진정한 가치까지 두루 느끼기에 충분하다. 또한 그가 극히 적은 분량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완성한 것으로도 유명한 작가인 만큼 짧은 단편들을 다수 실어 더욱 주목할 만하다.

매번 술값을 내지 않고 도망치는 가난한 시인 오타니와 그의 아내 이야기를 다룬 「비용의 아내」, 카리옷 유다의 종교적 성찰을 속도감 있는 문장으로 그린 「삼가 아룁니다」, 저자 특유의 힘 있는 필력과 함축적인 결말이 고스란히 드러난 「달려라 메로스」, 여성 화자의 복잡한 심리를 세밀하게 포착한 「피부와 마음」 등 다채로운 단편들이 수록되었다.

또한 의사 부부와 초등학교 교사 사모님의 이야기를 유머러스하게 그린 「만원(滿願)」, 매일 역 앞 벤치에 앉아 무언가를 기다리는 화자의 독백이 인상적인 「기다림」, 사람과 사람 사이의 손을 타고 떠도는 화폐의 시선으로 세상사를 그린 「화폐」 등, 분량은 극히 적지만 긴 여운을 남기는 짧은 단편들도 함께 실었다.

이 책은 우연히도 저자인 다자이 오사무의 생일이자, 그의 시신이 발견된 6월 19일 ‘앵두기’와 발간일이 정확히 맞닿아 더욱 뜻깊게 다가온다. 작품으로써 무한한 가치와 매력을 지닌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들을 이제 만나보자.

목차

비용의 아내  9
참새  41
만원(滿願)  57
삼가 아룁니다  63
달려라 메로스  83
황금풍경  103
기다림  111
리즈  115
피부와 마음  123
화폐  147

[책 속으로]

“우리 둘이 쫓아나가 도둑이라고 소리쳐서 길가는 사람이라도 불러 모을까 하다가도 모르는 사이도 아니고 그건 좀 너무하다 싶어서 참았습니다. 그래서 끝까지 뒤를 밟아 조용히 대화로 풀려고, 뭐 우리야 힘없는 장사꾼이니까, 우리가 오늘밤에야 이 집을 겨우 찾아내 부글거리는 속을 참아 가며 돈을 돌려주십사 하고 점잖게 말했더니, 이 무슨 난리야, 뭐? 칼로 찔러? 나 참, 세상에.” 또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번에는 소리 내서 웃어 버렸습니다. 부인도 얼굴이 벌게지며 살짝 웃었습니다. 웃음이 그치지 않아 남자 분에게 미안한 생각이 들었는데, 왜 그랬는지 한참 웃다가 나중에는 눈물이 나왔습니다. 남편이 쓴 시에 나오는 ‘문명 끝의 폭소’가 이런 경우를 말하나 보다 싶었습니다.“ _ pp.24-25 (비용의 아내)

우리 열셋은 언덕 위에 있는 오래된 음식점 이층의 어둑한 방을 빌려 만찬을 열기로 했습니다. 모두 식탁에 앉아 이제 막 저녁식사가 시작되었을 때, 그분이 갑자기 일어나 가만히 웃옷을 벗으셨습니다. 대체 무얼 하시려는 걸까 의아해했는데, 탁자 위에 있던 물 항아리를 들더니 물을 작은 대야에 따르고, 흰 수건을 자신의 허리에 감더니 대야의 물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겨주시기 시작했습니다. 제자들은 영문을 몰라 너무 당황해 어쩔 줄 몰랐지만, 저는 왠지 그분의 속마음을 알 것만 같았습니다. _ pp.76-77 (삼가 아룁니다)

저는 제77851호 백 엔짜리 지폐입니다. 당신 지갑 속에 들어있는 백 엔짜리 지폐를 한 번 보세요. 어쩌면 제가 거기에 들어가 있을지도 모르니까요. 저는 이제 완전히 녹초가 되어 지금 누구 품속에 안겨 있는 건지 아니면 쓰레기통 속에 널브러져 있는 건지조차 감이 오지 않습니다. 얼마 안 있어 모던한 지폐가 등장하면 우리 구식 지폐들을 모두 불태워 버릴 거라는 소문도 들은 바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도 사는 게 아닌 삶을 사느니 차라리 활활 불타 죽어버리고 싶습니다. 제가 불타고 나서 천국에 갈지 지옥에 갈지는 하느님 뜻이겠지만, 어쩌면 지옥에 떨어질지도 모르겠네요. _ p.148 (화폐)

다자이 오사무

1909년 아오모리 현에서 지방 유지였던 대지주의 아들로 태어났다. 다자이 오사무의 아버지는 늘 바빴고 어머니는 병약하여 태어나서부터 쭉 유모의 손에서 자랐다. ‘다자이 오사무’라는 이름은 필명으로, 본명은 쓰시마 슈지(津島 修治)이다. 17세였던 1925년, 동인지를 발행하기 시작했고 이에 실을 소설, 희곡, 수필 등의 습작품을 쓰면서 작가를 꿈꾸기 시작했다. 프랑스 문학을 동경하여 동경제국대학 문학부 불문학과에 진학한 저자는, 11남매 중 10번째 아들로 태어났다는 모호한 위치와 부유한 집안에 대한 죄책감으로 자기혐오와 마르크스주의에 심취하였다.

1936년 첫 단편집인 『만년』을 간행하였으며, 『인간실격』을 비롯해 『달려라 메로스』,『쓰가루』,『사양』 등 다양한 대표작을 남겼다. 저자의 작품은 일본 내에서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후세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장편과 단편을 가리지 않고 우수한 작품들을 썼다는 평가를 받으며, 특히나 『만원』의 경우가 그러하듯이 극히 적은 분량으로도 훌륭한 작품을 써냈다. 작품 중에는 여성 화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1인칭 작품들이 많은데, 남성 작가로서 여성의 심리를 매우 잘 파악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자이 오사무는 1948년, 향년 38세의 나이에 가벼운 평상복 차림으로 집을 나가 애인이었던 야마자키 도미에와 다마가와 강에서 투신자살하였다. 두 사람은 발견 당시 기모노 끈으로 서로 묶여있었는데, 공교롭게도 시신이 발견된 날짜가 다자이 오사무의 생일인 6월 19일이었다. 훗날 같은 고향 출신인 소설가 곤 간이치(今 官一) 에 의해 이 날을 ‘앵두기[桜桃忌]’라고 부르게 되었는데, 이는 다자이 오사무가 죽기 직전에 남긴 단편 소설『앵두[桜桃]』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50회 앵두기에 공개된 유서에 따르면 저자는 “소설을 쓰는 것이 싫어졌기 때문에 죽는다”고 자신의 자살 이유를 밝힌 바 있다.

역자

경찬수

건축 전공
번역서 『라쇼몽』, 『학이시습』 외

김정오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졸업
코자카트레이딩(한·일)대표
프리랜서로 활동 중
실용서적 다수 번역

노영애

일본학 전공
일본어 강사
번역서 『만개한 벚꽃나무 숲 아래』 외

방계정

일본학 전공
여행일본어, 노후설계컨설팅 강사
번역서 『귤』 외

이은숙

성신여대 대학원 한문교육학과 졸업
공립중학교 교사 역임
번역서 『의례의 온톨로기』 외

이재랑

미술대학 조소 전공
번역서 『외과실』 외

하라다 시즈카

도쿄대학 한국학 박사과정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특별과정 수료
프리랜서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