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마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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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자. 가쿠다 미쓰요
역  자.이은숙

“당신은 마마보이야”
영원히 빠져나올 수 없는 엄마의 굴레
『종이달』(제25회 사바타 렌자부로상 수상작) 
가쿠타 미쓰요가 그려 낸 관계의 미학!

직장도, 결혼생활도 엉망이 된 시게루는 결국 엄마에게 전화하기로 결심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다른 남자와 재혼한 엄마와는 20년 이상 만나지 못했다. 엄마와의 교류라고는 가끔 보내주는 각종 채소가 담긴 택배와 형식적인 엽서가 전부였다. 

공중전화 박스에 들어가 전화번호를 누르는 시게루의 머릿속에 작은 의문이 떠오른다.
‘내 이름을 대지 않아도 엄마는 나라는 걸 바로 알까?’

일본에서 문학성과 대중성으로 사랑받는 작가 가쿠다 미쓰요의 단편을 엮은 소설집 『마마보이』가 국내에서 출간됐다. 『마마보이』에 담은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모두 엄마와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육십 넘은 나이에 해외 이주를 떠난 엄마를 보며 초조해 하는 딸의 심리를 묘사한 「빗속을 걷다」, 입원한 엄마를 대신해 떠맡게 된 여섯 마리의 새를 옮기며 벌어지는 해프닝을 그린 「새를 운반하다」, 20년 이상 만나지 못한 엄마에게 사기전화를 거는 아들의 이야기를 담은 「울어, 아가야 울어」 등 ‘심리묘사에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가쿠타 미쓰요 특유의 치밀하고 섬세한 문체가 돋보이는 여덟 편의 작품이다. 

때로는 슬프고, 때로는 애틋하고, 때로는 그리운 엄마의 존재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항상 우리의 기억 한편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다 예고도 없이 엄마의 기억이 떠밀려오는 순간, 우리는 깨닫는다. ‘나는 엄마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마마보이』에 담긴 여덟 편의 이야기들은 우리가 가진 ‘엄마’에 대한 향수를 자극하며 애써 외면하고 감춰왔던 기억을 끄집어낸다. 

목차

허공을 차다
빗속을 걷다 
새를 운반하다 
파슬리와 온천 
마마보이 
둘이 살기 
울어, 아가야, 울어
첫사랑 찾아서 떠난 여행 
역자 후기 

[책 속으로]

이 도시에 내리는 비는 기름 같다. 끈적한 액체가 선을 그리듯 떨어져 몸에 달라붙는다. 여기 사람들은 비에 젖든 말든 신경 쓰지 않는다. 마치 맑게 갠 하늘 아래를 걸어 다니듯 다닌다. 옆에 서 있는 엄마는 젖어서 군데군데 색이 변한 종이봉투를 소중하게 껴안고 하늘을 쳐다보고 있다. 검은 머리카락이 뺨과 목덜미에 달라붙어 있다. 혈관이 비칠 정도로 하얀 피부 위로 물방울이 천천히 흘러내리고 있다. 비인지 땀인지 모르겠다. 사진으로도 본 적이 없는 소녀 시절의 엄마와 옆에 서 있는 나이든 엄마가 겹친다. 당황스러울 만큼 생생하게. 엄마는 예쁜 소녀였을지도 모른다.
「빗속을 걷다」 중에서

엄마는 젊은 여성처럼 고개를 약간 숙이고 링거가 꽂히지 않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고 있었다. 아버지는 가운을 입은 엄마의 무릎에 가볍게 손을 올리고 뭔가 열심히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다. 창밖에서 강렬하게 들어오는 햇살 탓에 그들의 윤곽은 빛을 발하면서 부옇게 보였다. 환자와 문병객이 아닌 늙음이나 병과는 무관한, 더 과장되게 말하면 혐오나 증오와도 무관한, 싱그럽고 청초한 무언가로 보였다.
「파슬리와 온천」 중에서

나는 엄마를 몰랐다. 엄마는 나를 알고 있었을까. 내 입으로 나쁜 짓을 한 이유를 말하게 하고, 거짓말과 사실을 섞어 꾸며서 말하게 하고서도 나란 인간을 알고 있다고 생각했을까. 지금은 알고 있는 걸까. 나는 어린아이처럼 무엇이든 엄마에게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전화를 걸어 사유리와 어디에서 만났고 왜 결혼하기로 했는지, 노자키 문구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지금 내가 파견지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오야마다 아이코에게 날마다 어떤 말을 듣고 있는지, 어떤 이유에서 이 결혼이 실패했다고 생각하는지, 왜 데즈카 씨와 잠자리를 갖게 되었는지. 나의 일상을 이루고 있는 것, 내가 생각하는 것을 하나도 남김없이 리놀륨 바닥에 슬리퍼를 신은 어머니의 발을 보며 홀랑 털어놓고 싶었다.
「마마보이」 중에서

0, 4, 7로 시작하는 숫자를 확인하며 번호를 누르는 사이, 시게루의 마음속에 작은 의문이 떠올랐다. 내 이름을 대지 않아도 엄마는 나라는 걸 바로 알까? ‘여보세요’라는 소리만 들어도 ‘아아, 시게루’ 하고 반가운 목소리로 받아 줄까? 시게루가 아니라 시이 짱이다! 엄마는 나를 시이 짱이라고 불렀다. ‘아아, 시이 짱이니?’ 하고 불러 줄까. 그런 생각으로 심장박동이 더 빨라졌다. 번호를 누르는 손이 가늘게 떨렸다. 축축해진 손으로 수화기를 쥔 시게루는 전화가 가는 신호음 소리를 들었다.
「울어, 아가야, 울어」 중에서

엄마는 일주일에 한 번꼴로 전화를 걸어 정년퇴직한 아버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서 흉을 보는데 그냥 놔두면 한 시간이고 계속됐다. 더 들어주면 내가 아이를 낳을 생각을 안 한다고 한탄하고, 당신이 잘못 기른 것 같다고 줄줄이 푸념을 늘어놓았다. 무시하고 전화를 끊기라도 하면 그다음엔 편지가 왔다. 끝없이 써 내린 깨알 같은 글씨로 과연 엄마 자신이 살 가치가 있는지 없는지와 같은 자문자답이 계속되었다. 화내며 전화를 끊어 버리고 편지를 좍좍 찢는 나를 히로후미는 이상한 짐승 보듯 보았다.
「첫사랑 찾아서 떠난 여행」 중에서

가쿠타 미쓰요
 

일본에서 문학성과 대중성으로 주목받고 사랑받는 작가이자 번역가. 가나가와현 출생으로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으며, 1990년 『행복한 유희』로 제9회 가이엔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문단에 데뷔했다.
『조는 밤의 UFO』(1996년 노마 문예 신인상), 『나는 너의 오빠』(1998년 쓰보타 조지 문학상), 『납치여행』(1999년 제46회 산케이 아동출판문화 후지TV상), 『공중정원』(2003년 부인공론 문예상), 『대안의 그녀』(2005년 제132회 나오키상), 『록 엄마』(2006년 가와바타 야스나리 문학상), 『8일째의 매미』(2007년 제2회 중앙공론 문예상, 『종이달』(2012년 제25회 시바타 렌자부로상) 등 다수의 작품으로 각종 문학상을 수상했으며, 여러 작품이 영화와 TV 드라마로 제작되었다. 
2015년에는 일본 버블기 후반을 배경으로 독자들의 많은 공감을 얻은 소설 『종이달』이 동명의 영화로 제작, 우리나라에서 개봉되었다.


이은숙
 

성신여자대학교 대학원 한문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중학교 교사를 역임했다. 옮긴 책으로는 『의례의 온톨로기』, 『다자이 오사무 단편 10선』(공역), 『고양이와 쇼조와 두 여자』, 『미야자와 겐지 단편선』이 있다.